전도서 - 붙잡을 수 없는 삶, 어떻게 살아야 하나? (전도서 3:9-14)

붙잡을 수 없는 삶, 어떻게 살아야 하나? (전도서 3:9-14) 2026년 10월 4일 주일예배 독일 Ramstein 한인교회

---------- 설교노트 - 붙잡을 수 없는 삶, 어떻게 살아야 하나? (전도서 3:9-14) 1. 기술이 발전하면서 한 가지 일을 하는 데 필요한 시간과 수고는 크게 줄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남는 시간만큼 쉬기보다 더 많은 일을 하며 여전히 분주하게 살아갑니다. 이번 일만 끝내면, 조금만 더 안정되면 삶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수고는 좀처럼 끝나지 않습니다. 전도서는 이렇게 애쓰는 우리에게 그 모든 수고로 무엇을 얻고 있는지 묻습니다(3:9). 2. '헛되다’고 번역된 히브리어 ‘헤벨’은 잠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입김과 같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날도, 건강하게 일하는 시기도 분명히 우리에게 주어졌지만 원하는 만큼 붙잡아 둘 수는 없습니다. 수고하는 사람은 나이지만, 때를 정하는 사람까지 나인 것은 아닙니다(3:1–8). 오늘 최선을 다할 수는 있어도 그 수고의 결과와 그것이 얼마나 오래 지속될지까지 내가 다 정할 수는 없습니다. 내게 주어졌다는 사실이 언제까지 내 손에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3. 전도자는 "일하는 자가 그의 수고로 말미암아 무슨 이익이 있으랴"라고 묻습니다(전 3:9). '이익'으로 번역된 '이트론'은 수고를 다 마친 뒤 내 손에 '남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는 이번 일만 끝나면, 조금만 더 안정되면 쉴 수 있으리라 생각하며 오늘의 수고를 견딥니다. 그러나 얻은 뒤에도 수고는 멈추지 않으며, 언제 괜찮아질지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전도서는 수고가 끝나는 때를 알려 주지 않습니다. 그 대신 수고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을 바꾸어 줍니다. 4. 전 3:9은 '수고의 결과'로 얻게 될 것에 관심을 두지만, 13절은 '수고 가운데서' 좋은 것을 '누리는 것'에 대해 말합니다. 문제는 수고 자체가 아니라, 수고하면서 정작 삶을 누리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전도서는 자녀도 가족도 없이 홀로 살지만 가진 것으로 만족하지 못하여 끝없이 수고하는 어떤 사람과(전 4:8), 많은 것을 얻었으나 정작 그것을 누리지 못하고 떠나는 사람을 보여 줍니다(전 6:2). 소유가 는다고 누림까지 늘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두 손 가득한 수고보다 한 손에 담긴 평온이 낫다는 말씀처럼(전 4:6), 한 손을 펼 수 있어야 오늘을 누릴 수 있습니다 5. 누림은 마음을 편하게 먹겠다는 결심만으로 되지 않습니다. 내가 모든 것을 붙들고 있지 않아도 된다는 근거가 필요합니다. 전도자는 사람이 하나님의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알 수 없다'고 하면서도(전 3:11), 하나님의 행하시는 일은 영원하며 사람이 더하거나 덜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고 말합니다. 또한 그는 하나님이 이렇게 행하심은 사람으로 하여금 그분 앞에서 경외하게 하려는 것임임을 '안다'고 말합니다(전 3:14). 경외는 내가 모든 것을 다 이해하고 통제할 수 없다는 고백에서 시작됩니다. 책임을 저버리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이 아님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이 하나님이심을 신뢰하라는 것입니다. 6. 하나님을 경외한다고 해서 삶의 불확실함이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내일을 알지 못합니다. 지혜는 헤벨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헤벨 속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맡겨진 일은 최선을 다해 감당하되, 그 과정과 결과를 내가 모두 통제할 수 있다고 여기지는 말아야 합니다. 앞길을 다 알 수 없기에, 우리는 오히려 그 길을 아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며 걸어갈 수 있습니다. 수고를 놓을 수 없는 인생 속에서, 수고를 다 한 뒤에야 비로소 뭔가를 누리는 것이 아니라, 수고하는 오늘, 하나님이 이미 우리에게 허락하신 좋은 것들을 마음껏 누리며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전도서 #헤벨 #불확실 #통제 #램스타인한인교회 #Kaiserslautern #카이저슬라우테른 #ram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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