램스타인 한인교회 소개

램스타인   한인교회 는... 1. 램스타인  공군부대 곁에 자리잡은 교회입니다. 하나님께서 램스타인( Ramstein) 과 카이저슬라우테른( Kaiserslautern)  주변 지역으로 우리를 보내셨음을 알고, 보내신 자리에서 복음에 뿌리내려 자라다가,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곳으로 민들레 씨앗처럼 흩어져 생명의 복음을 온 땅에 전하는 교회입니다. 2. 한인 교회입니다. 지역의 특성상 미국 국적의 한인들과 독일에 자리 잡고 살아가는 한인들이 함께 모여 예배하는 한인 디아스포라 공동체입니다. 한국어로 예배하며, 영어 통역을 제공합니다.  한한 가정, 한미 가정, 한독 가정 등 다양한 형태의 한인 디아스포라가 함께 공동체를 이루어, 서로 사랑하고 위로하며, 함께 울고 함께 웃는 사랑의 공동체입니다.. 3.  주님의 몸 된  교회 입니다.  우리의 뜻이 아니라 주님의 뜻에 순종하며, 그 뜻을 이루는 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하나님 의  나라 가 우리 교회 안에 이루어져 풍성한 복과 은혜를 누리고,  하나님 의  사랑 이 우리 교회를 통해 흘러넘쳐 지역과 이웃을 복되게 하며,  하나님 의  영광 이 우리 교회로 말미암아 그 풍성한 모습을 드러내는 주님의 몸 된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예배 시간 주일 예배   13:00          교사 예배           12:00 주일 학교   13:00          유스  (청소년부) 13:00...

2026년 5월 24일 교회 주보

이미지
 

천국, 백향목이 아닌 겨자 '나무'에 비유되다 (마 13:31-33)

이미지
천국, 백향목이 아닌 겨자 '나무'에 비유되다 (마 13:31 -33) 2026년 5월 17일 주일예배 #야외예배 #천국비유 #겨자씨 #마태복음13장 #램스타인한인교회 #Kaiserslautern #카이저슬라우테른 #ramstein #koreanchurch #홍성일목사 -------- 설교노트 - 천국, 백향목이 아닌 겨자 '나무'에 비유되다 (마 13:31 -33) 1. 열린 하늘 아래에서 듣는 천국의 비유 - 오늘 우리는 교회 건물 밖, 열린 하늘 아래에서 예배를 드립니다.바람이 불고, 나무가 흔들리고, 새들이 날아다니는 이 자리에서 예수님의 비유는 더욱 생생하게 다가옵니다.예수님은 천국을 설명하시면서 성전이나 왕궁이 아니라 갈릴리 들판의 겨자를 가리키셨습니다. 당시 사람들에게 겨자는 향신료로 쓰이던 매우 익숙한 식물이었습니다. 씨앗은 작고 눈에 잘 띄지 않았지만, 누구나 알고 있던 일상적인 존재였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그 평범한 식물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보여 주셨습니다. 2. 백향목을 기대했는데 겨자를 말씀하신 예수님 - 구약에서 하나님의 통치는 종종 백향목과 같은 거대한 나무로 묘사됩니다(겔 17:23 ). 백향목은 높고 웅장하며 멀리서도 눈에 띄는 위엄의 상징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 역시 그렇게 강력하고 화려할 것이라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아무 데서나 볼 수 있는 겨자를 가리키셨습니다. “천국은 백향목과 같다”가 아니라 “천국은 겨자 나무와 같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비유는 사람들이 가진 하나님 나라의 상식을 뒤집는 선언이었습니다. 3. 겨자 같은 사람들 가운데 임한 하나님 나라 - 처음 이 말씀을 들은 사람들은 당황했을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라면 로마를 무너뜨릴 힘과 누구나 알아볼 영광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 주변에 모인 이들은 어부, 세리, 병든 자, 애통하는...

2026년 6월 17일 교회 주보

이미지
 

에베소서 -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 (엡 6:4)

이미지
에베소서 -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 (엡 6:4) 2026년 5월 10일 주일예배   #에베소서6장 #중력과은총 #시몬베이유 #자녀 #램스타인한인교회 #Kaiserslautern #카이저슬라우테른 #Ramstein #koreanchurch #홍성일목사 설교노트 -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 (에베소서 4장 6절) 1. 사랑에도 중력이 작용합니다 - 오늘은 어버이 주일입니다. 우리는 흔히 자녀를 사랑한다고 말합니다. 그 사랑 자체를 의심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시몬 베유의 표현을 빌리면, 사랑 안에도 중력이 작용할 수 있습니다. 중력은 애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영혼의 움직임입니다. 인정받고 싶고, 통제하고 싶고, 소유하고 싶고, 나를 지키고 싶은 마음이 사랑 속에도 스며듭니다. 그래서 사랑이 언제나 곧 참된 사랑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2. “다 너를 위해서야”라는 말의 무게 - 부모는 자녀를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그러나 “다 너를 위해서야”라는 말이 아이에게는 큰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부모의 불안과 기대가 사랑의 이름으로 전달되기 때문입니다.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통제로, 실패를 막고 싶은 마음은 간섭으로, 더 나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은 비교와 압박으로 바뀌기 쉽습니다. 그때 자녀는 사랑받기보다 관리받는다고 느낍니다. 사랑은 따뜻한 말로 시작되지만, 때로 아이의 마음에 분노를 쌓아 올릴 수 있습니다. 3. “아비들아,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 - 1세기 로마 사회에서 아버지는 가정의 법적·사회적 권위의 중심이었습니다. 자녀는 아버지의 권한 아래에 있는 존재로 여겨졌습니다. 이 문화에서 권위자인 아버지가 분노를 표출하는 것은 당연했고, 자녀는 그 분노의 대상일 뿐이었습니다. 그런 시대에 바울은 아버지에게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고 명령합니다. 자녀는 부모가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복음은 자녀를 부모의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 선 한 사람으로 바라보게 합니다. 4....

2026년 5월 10일 교회 주보

이미지
 

사무엘상 - 하나님은 마음으로 보신다 (삼상 16:7)

이미지
사무엘상 - 하나님은 마음으로 보신다 (삼상 16:7) 2026년 5월 3일 어린이 주일예배 독일 Ramstein 한인교회 #사무엘상 #다윗 #마음으로보시는하나님 #램스타인한인교회 #Kaiserslautern #카이저슬라우테른 #Ramstein 설교노트 - 하나님은 마음으로 보신다 (삼상 16:7) 1. 우리는 누군가를 처음 만날 때 자신이 꽤 합리적으로 판단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우리의 판단은 매우 빠르게 일어나며, 때로는 0.1초도 되지 않는 순간에 상대를 평가합니다. 옷차림, 자세, 키, 얼굴, 목소리 같은 시각적·감각적 정보가 순식간에 판단의 재료가 됩니다. 인지과학에서는 복잡한 정보를 빠르게 처리하기 위해 사용하는 이런 정신적 지름길을 ‘휴리스틱’이라고 부릅니다. 문제는 이 빠른 판단이 편리하긴 하지만, 사람의 본질과 가능성을 제대로 보게 하지 못한다는 데 있습니다. 2. 하나님은 사울을 대신하여 새 왕을 세우시기 위해 사무엘을 베들레헴의 이새에게 보내셨습니다. 이새의 아들들이 사무엘 앞에 섰을 때, 사무엘은 큰아들 엘리압을 보고 그가 하나님이 택하신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엘리압은 키가 크고 용모가 훌륭하여 사람의 눈에는 왕의 조건을 갖춘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사무엘의 판단은 인간적으로는 매우 자연스럽고 합리적인 판단이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지점에서 하나님은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무엘의 판단뿐 아니라, 눈에 보이는 정보를 곧 진실로 여기는 우리 모두의 판단 방식을 멈춰 세웁니다. 3. 삼상 16:7은 흔히 “사람은 외모를 보지만 하나님은 중심을 보신다”는 뜻으로 이해됩니다. 그러나 히브리어 표현을 더 직접적으로 살피면, “사람은 눈으로 보지만 여호와는 마음으로 보신다”는 뜻에 가깝습니다. 핵심은 보는 대상의 차이가 아니라, 보는 방식과 도구의 차이에 있습니다. 사람은 눈이라는 제한된 장치로 보지만, 하나님은 마음으로...

2026년 5월 3일 교회 주보

이미지
 

사무엘상 - 사울의 실패와 왕이신 하나님 (삼상 13:3-12)

이미지
사무엘상 - 사울의 실패와 왕이신 하나님 (삼상 13:3-12)   2026년 4월 26일 주일예배 독일 Ramstein 한인교회 #사무엘상 #사울 #왕 #램스타인한인교회 #Kaiserslautern #카이저슬라우테른 #Ramstein #koreanchurch ------ 설교 노트 - 사울의 실패와 왕이신 하나님 (삼상 13:3-12) 1.이스라엘은 위기 앞에서 예측 가능하고 통제할 수 있는 왕을 원했습니다. 하나님은 그 요구를 들어주시면서도, 자신이 참된 왕이심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C.S. 루이스의 아슬란처럼, 하나님은 우리가 길들일 수 있는 분이 아닙니다. 그는 우리의 시간표가 아니라 자신의 뜻을 따라 다스리십니다. 그러나 그의 통치는 의로우며, 그는 선하신 왕이십니다. 사울은 바로 그 왕 앞에 세워진 첫 번째 왕이었습니다. 2. 사울은 요나단을 통해 블레셋 수비대를 공격하며 왕으로서의 사명을 시작합니다. 이 선택은 무모한 행동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에 부합하는 행동이었습니다. 그러나 블레셋의 반응은 예상보다 훨씬 강력했습니다. 압도적인 군세가 믹마스에 집결하면서 상황은 급격히 악화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두려움에 흩어지고 숨고 도망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울 곁에 남은 사람들조차 떨고 있었습니다. 기대했던 승리의 길이 순식간에 두려움의 현실로 바뀌었습니다. 사울은 길갈에서 사무엘을 기다렸지만, 칠 일이 다 되도록 사무엘은 오지 않았고, 사울은 스스로 번제를 드리게 됩니다. 3. 첫 번째 실패: 내가 보았다 - 사울은 “내가 보았다”고 말합니다. 그는 백성이 흩어지는 것, 사무엘이 오지 않는 것, 블레셋이 모이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가 본 것은 모두 사실이었습니다. 문제는 그가 본 것이 사실의 전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에게는 블레셋의 손에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 있었고, 내가 올때까지 기다리라는 명령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

2026년 4월 26일 교회 주보

이미지
 

사무엘상 - 우리에게 왕을 주소서. 누가 나의 왕인가? (삼상 12:12-16)

이미지
우리에게 왕을 주소서 - 누가 나의 왕인가? (삼상 12:12-16) 2026년 4월 19일 주일예배  독일 램스타인 한인교회   #사울 #왕 #사무엘상 # #램스타인한인교회 #Kaiserslautern #카이저슬라우테른 #ramstein #홍성일목사 --- 설교노트 - 우리에게 왕을 주소서! 누가 나의 왕인가? (삼상 12:12 -16) 1. 이스라엘은 암몬 왕 나하스의 위협을 보았고, 그 두려움 속에서 왕을 요구했습니다(삼상 12:12 ). 문제는 위협을 본 것이 아니라, 그 상황 속에서도 여전히 왕이신 하나님을 보지 못한 데 있었습니다. 갈릴리 바다의 제자들이 풍랑만 보고 예수를 놓쳤던 모습과 같습니다. 우리의 시선은 위기 속에서 쉽게 눈앞의 문제에 고정됩니다. 그러나 참된 통치는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너희 믿음이 어디에 있느냐”는 질문은 지금도 유효합니다. 2. 이스라엘의 요청은 정치 제도의 필요 때문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불안을 단번에 해결해 줄 눈에 보이는 힘을 원했습니다. 하나님이 왕이심에도 불구하고 다른 왕을 요구한 것은 신뢰의 문제였습니다. 왕정 자체는 잘못이 아니지만, 그 요구의 중심이 하나님이 아니라는 점이 문제였습니다. 불안은 언제나 손에 잡히는 대안을 찾게 만듭니다. 그러나 신앙은 보이지 않는 왕을 신뢰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3. 이스라엘의 왕은 주변 국가들처럼 신을 대리하거나 독점적 권력을 지닌 존재가 아닙니다. 본문 14절과 15절은 왕과 백성을 구분하지 않고 철저히 동일한 통치 아래 둡니다. 왕 또한 백성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할 대리자일 뿐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고 그 목소리에 청종하는 것만이 왕과 백성 모두가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왕이라는 제도가 스스로 구원과 번영을 낳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만이 국가와 개인의 바른길을 엽니다. 4. 사울은 처음부터 폭군이 아니었습니다. 사울은 긍정적으로 발현될 수 있는 성실함, 신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