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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개 (2) - 보잘것없음, 그 너머의 영광 (학개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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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개 (2) - 보잘것없음, 그 너머의 영광 (학개 2:1-5) 2025년 12월 14일 주일예배 #학개 #보잘것없음 #기대 #실망 #비교의기준 #램스타인한인교회 #ramstein #카이저슬라우테른 #kaiserslautern #한인교회 --------- <설교노트> 학개(2) - 보잘것없음, 그 너머의 영광 (학개 2:1-5) 1. 16년 동안 성전을 방치했던 귀환 공동체는 학개의 말을 듣고, 성전 공사를 재개하였습니다. 그때가 BC 520년 '여섯째 달 24일'로, 우리 달력으로는 더위가 한풀 꺾이는 9월 중순 경이었습니다. 행복은 마음 먹기에 달려 있다고들 말하지만, 오히려 몸을 움직여 무엇을 하느냐에 직접적으로 좌우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16년 동안 방치된 채, 마음 속 ‘무거운 짐’처럼 얹혀 있던 성전 건축을 재개하면서, 귀환 공동체는 참으로 기쁘고 행복했을 것입니다. 2. 그런데 성전 공사가 재개된 지 한 달이 채 되기 전인 '일곱째 달 21일', 하나님의 말씀이 선지가 학개에게 다시 임합니다(2:1). 일곱째 달 21일은, 초막절 마지막 날로, 우리 달력으로는 10월 중순에 해당하는 시기입니다. 초막절은 곡식의 타작과 과일의 수확이 대부분 마무리되어 그 산물을 저장한 뒤에 지키는 절기로, 그 때는 일년 중 가장 먹거리가 풍성한 시기였습니다. 창고에는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이 넉넉한데, 이스라엘은 일부러 마당이나 지붕 위에 초막을 짓고 그 곳에서 일주일을 보냈습니다. ‘최대한의 풍요’와 ‘정착할 곳 없는 불안정한 상황’이 공존하는 아주 기이한 조합이 바로 초막절이었습니다. 초막절의 이 역설적 조합은 성전 건축을 재개한 공동체의 형편과 그대로 겹쳐집니다. 3. 성전 공사를 시작하기 전, 그들은 자신들의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공사를 시작하고, 돌들이 올라가고, 공사를 위한 가설 구조물 등이 세워지는 것을 보면서 이들은 자신들이 짓는 ...

2025년 12월 14일 교회 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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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2월 14일 교회 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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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개(1) - 삶에 만족이 없는 까닭 : 깊이 생각하고, 지금 건축하라 (학 1:1-8) 2025년 12월 7일 주일예배  독일 램스타인한인교회 홍성일 목사 설교노트 삶에 만족이 없는 까닭 - 깊이 생각하고, 지금 건축하라 (학 1:1-8) 1. 우리는 기술의 발전으로 삶의 속도가 빨라지고 편리해졌지만, 정작 여유와 만족을 잃어버렸습니다. 유튜브 영상이 1~2초만 늦어도 시청을 포기하는 시대에, 우리는 즉각적인 자극만을 쫓는 도파민 중독자처럼 살아갑니다. 세탁기, 건조기, 로봇 청소기 등이 일상의 수고를 덜었지만, 역설적으로 삶의 여유는 오히려 사라졌습니다. 우리는 열심히 사는데도 마음에 만족과 평안, 행복이 깃들지 않는 공허함을 느낍니다. 이 공허함의 원인 중 하나는 생각 없이 살아가는 삶입니다. 이런 현대인의 삶에 대해 ‘호모 브레인 오프(Homo Brain-off)', 즉 생각의 스위치를 끈 채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입니다. 2. 본문은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한 지 18년이 지난 BC 520년 상황을 배경으로 합니다. 유다 백성은 고레스의 칙령으로 예루살렘에 돌아와 성전을 재건하고 거룩한 예배 공동체로 살기를 꿈꾸었습니다. 실제로 귀환 직후 제단을 쌓고 절기를 지키며 감격 속에 성전 기초를 놓는 일까지는 진행했습니다. 그러나 주변 민족의 방해와 경제적 곤궁으로 인해 성전 공사는 곧 중단되었고, 그 상태로 16년이 흘렀습니다. 성전은 기초만 남은 채 방치되었고, 백성은 각자의 생계를 꾸리느라 바쁘게 살아야 했습니다. 마음 한켠으로는 성전과 예배를 생각했겠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다”라는 말로 미루는 사이, 어느덧 긴 세월이 지나가 버렸습니다. 3. 하나님은 학개를 통해 “이 성전이 황폐하였거늘 너희가 이 때에 판벽한 집에 거주하는 것이 옳으냐”(1:4)고 물으십니다. ‘판벽한 집’은 천장과 벽을 널판으로 덮어 마감한 집으로, 솔로몬 성전에 쓰인 나무 널판을 떠올리게 하는 표현입니다. 성전은 기초만 놓인 채 버려져 있었으나, 이들은 나무로...

2025년 12월 7일 교회 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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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는 것 (마 19:2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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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는 것 (마 19:27-30) 2025년 11월 30일 주일예배 설교 독일 Ramstein 한인교회 홍성일 목사 <설교노트>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는 것(마 19:27-30) 1. 지난 주 우리는 포도원 품꾼 비유를 통해 ‘제한된 자원’에 대한 사회적 전제 속에서 시기와 두려움으로 살아가는 세상을 하나님 나라와 바교하여 살펴보았습니다. 이 세상의 재화가 한정되어 있다면, 누군가가 하나를 얻으면 다른 누군가는 하나를 잃게 될 것입니다. ‘제로섬(Zero-sum) 게임’의 논리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누군가의 잘됨은 나에게 불안의 이유가 되고, 누군가의 성취는 나에게 위협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는 이 세상의 ‘한정된 재화’의 논리와는 다르게 작동합니다. 하나님의 곳간은 마르지 않기에, 누군가에게 베풀어진 은혜가 나에게 허락될 은혜의 상실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2. 안타깝게도 많은 성도가 여전히 세상의 '제한된 자원' 논리로 신앙을 이해하곤 합니다. 누군가가 구원을 받거나 은혜를 입으면 마치 내가 받을 구원의 기회나 몫이 줄어들 것처럼 오해합니다. 14만 4천이라는 상징적인 숫자를 문자적으로 해석하여 경쟁을 부추기는 이들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포도원 품꾼 비유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줍니까? 주인은 12시간 일한 사람에게도 한 데나리온을 주고, 1시간 일한 사람에게도 한 데나리온을 줍니다. 주인은 얼마든지 자신이 은혜로 불러들인 자들에게 그가 약속한 줄 것이 있습니다.   3. 우리는 흔히 천국을 이 땅에서의 수고에 따라 차등적인 보상이 주어지는 곳으로 상상하곤 합니다. 헌신한 자는 큰 집을, 그렇지 못한 자는 초라한 거처를 얻는다는 식의 설명은 자본주의적 욕망을 천국에 투영한 세속적인 상상력일 뿐입니다. 차별적 지위와 소유가 기쁨의 근거가 되는 곳이라면, 그곳은 하나님 나라가 아니라 탐욕스러운 세상의 연장선에 불과할 뿐입니다. 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