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3, 2026의 게시물 표시

2026년 4월 26일 교회 주보

이미지
 

사무엘상 - 우리에게 왕을 주소서. 누가 나의 왕인가? (삼상 12:12-16)

이미지
우리에게 왕을 주소서 - 누가 나의 왕인가? (삼상 12:12-16) 2026년 4월 19일 주일예배  독일 램스타인 한인교회   #사울 #왕 #사무엘상 # #램스타인한인교회 #Kaiserslautern #카이저슬라우테른 #ramstein #홍성일목사 --- 설교노트 - 우리에게 왕을 주소서! 누가 나의 왕인가? (삼상 12:12 -16) 1. 이스라엘은 암몬 왕 나하스의 위협을 보았고, 그 두려움 속에서 왕을 요구했습니다(삼상 12:12 ). 문제는 위협을 본 것이 아니라, 그 상황 속에서도 여전히 왕이신 하나님을 보지 못한 데 있었습니다. 갈릴리 바다의 제자들이 풍랑만 보고 예수를 놓쳤던 모습과 같습니다. 우리의 시선은 위기 속에서 쉽게 눈앞의 문제에 고정됩니다. 그러나 참된 통치는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너희 믿음이 어디에 있느냐”는 질문은 지금도 유효합니다. 2. 이스라엘의 요청은 정치 제도의 필요 때문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불안을 단번에 해결해 줄 눈에 보이는 힘을 원했습니다. 하나님이 왕이심에도 불구하고 다른 왕을 요구한 것은 신뢰의 문제였습니다. 왕정 자체는 잘못이 아니지만, 그 요구의 중심이 하나님이 아니라는 점이 문제였습니다. 불안은 언제나 손에 잡히는 대안을 찾게 만듭니다. 그러나 신앙은 보이지 않는 왕을 신뢰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3. 이스라엘의 왕은 주변 국가들처럼 신을 대리하거나 독점적 권력을 지닌 존재가 아닙니다. 본문 14절과 15절은 왕과 백성을 구분하지 않고 철저히 동일한 통치 아래 둡니다. 왕 또한 백성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할 대리자일 뿐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고 그 목소리에 청종하는 것만이 왕과 백성 모두가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왕이라는 제도가 스스로 구원과 번영을 낳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만이 국가와 개인의 바른길을 엽니다. 4. 사울은 처음부터 폭군이 아니었습니다. 사울은 긍정적으로 발현될 수 있는 성실함, 신중...

2026년 4월 19일 교회 주보

이미지
 

누가복음 - 너희의 믿음이 어디에 있느냐? (눅 8:22-25)

이미지
누가복음 - 너희의 믿음이 어디에 있느냐? (눅 8:22-25) 2026년 4월 12일 주일예배 독일 Ramstein 한인교회   #풍랑 #램브란트 #믿음 #램스타인한인교회 #Kaiserslautern #카이저슬라우테른 #ramsteinanalyse #홍성일목사 ---------- 설교노트 - 너희의 믿음이 어디에 있느냐? (눅 8:22 -25) 1. 살다 보면 예상치 못한 어려움과 통제할 수 없는 위기를 만나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과 제자들은 갈릴리 호수를 건너던 중 갑작스러운 광풍을 만납니다. 제자들 중 최소 네 명은 갈릴리 어부 출신으로, 그 호수를 누구보다 잘 아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도 이 풍랑은 감당할 수 없는 위기였고, 배에 물이 들어차며 죽음의 공포가 엄습했습니다. 갈릴리 바다는 언제든 돌풍이 불 수 있는 곳이었지만, 그럼에도 어부들이 삶을 일구며 살아가던 삶의 터전이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도 그러합니다. 예측 불가한 위험과 통제 불가한 상황이 갑작스레 일어나는 곳이지만, 우리는 그 세상 속에서 우리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2. 풍랑이 이는 동안 예수님은 배에서 잠들어 계셨습니다. 제자들은 그 상황을 스스로 감당하려 애쓰다가 한계에 이릅니다. 그리고 나서야 예수님을 깨우지만, 그들의 말에는 믿음의 간구가 아니라 두려움의 토로만 담겨 있습니다. “우리가 죽겠나이다”라는 외침은 상황에 대한 반응일 뿐입니다. 그들은 예수께서 함께 계신다는 사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배에 계셨지만, 그들의 삶에서는 계시지 않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었습니다. 3. 렘브란트는 27세에 이 장면을 그림으로 남겼습니다. 화면 속 제자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위기에 반응하고 있습니다. 어떻게든 상황과 맞서 사투하는 자가 있고, 고통과 괴로움 속에 무너지는 자가 있으며, 체념한 듯 포기한 자도 있습니다. 한편 두려움 속에서도 예수를 향해 몸을 돌리는 자, 예수의 옷깃을 붙잡고 깨우는 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