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 부분적으로 아는 자들의 사랑 (고전 13:9-13)
부분적으로 아는 자들의 사랑 (고전 13:9-13) 2026년 6월 14일 주일예배 독일 Ramstein 한인교회
#고린도전서 #사랑 #어린아이 #의사소통 #부분적 #램스타인한인교회 #Kaiserslautern #카이저슬라우테른 #Ramstein #홍성일목사 --------- 설교노트 - 부분적으로 아는 자들의 사랑 (고전 13:9-13) 1. 고린도전서 13장은 따뜻한 사랑의 시처럼 들리지만, 본래 서로 비교하고 경쟁하며 상처 주던 고린도교회에 주어진 말씀입니다. 고린도교회에는 말과 지식과 은사가 풍성했지만, 사랑이 없을 때 그것들은 교회를 세우지 못했습니다. 바울은 방언, 예언, 지식, 구제와 헌신이 귀하지만, 사랑이 없다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합니다. 사랑은 오래 참음으로 시작하여 모든 것을 견디는 데까지 나아갑니다. 그러므로 “사랑합니다”라는 말은 “당신을 오래 참고, 끝까지 견디겠습니다”라는 고백이기도 합니다. 2. 바울은 “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한다”고 말합니다. 지금 우리의 앎은 온전하지 않고, 거울로 보는 것처럼 희미합니다. 당시의 금속 거울이 사물을 흐릿하게 비추었듯이, 우리의 인식도 사람과 사건을 있는 그대로 완전히 비추지 못합니다. 나 자신에 대한 나의 지식도 부분적이기에, 다른 사람을 향한 우리의 이해는 더욱 제한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사랑은 이 한계를 인정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3. 우리는 한 사람의 말, 표정, 행동, 몇 번의 경험을 붙잡고 그 사람 전체를 판단하려 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본 것은 그 사람의 전체가 아니라 청동 거울에 비친 희미한 한 장면일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의 지난 삶, 상처, 두려움, 말하기 방식, 하나님께서 그 안에서 행하시는 일을 우리는 다 알지 못합니다. 오해가 생기는 것 자체보다 더 위험한 것은 내가 본 것이 전부라고 확신하는 태도입니다. 자신이 부분적으로만 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쉽게 단정하지 않고, 쉽게 정죄하지 않으며, 쉽게 관계를 끊지 않습니다. 4. 바울은 어린아이였을 때에는 말하는 것, 깨닫는 것,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았지만,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다고 말합니다. 어린아이는 자기 관점과 타인의 관점이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구별하지 못합니다. 자기가 느끼는 것이 곧 사실이고, 자기 기준이 모두의 기준이라 생각하며, 부분적인 정보로 확정적인 결론을 내립니다. 고린도교회는 바로 이런 어린아이들로 가득했습니다. 5. 장성한 자는 자신의 느낌과 사실이 다를 수 있음을 알고, 자기의 기준이 모두의 기준이 아님을 알며, 부분적인 정보로 섣부르게 판단하지 않습니다. 누군가의 미숙함, 어색함, 거절처럼 보이는 태도 뒤에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정이 있을 수 있음을 생각합니다. 사랑은 상대를 무조건 좋게만 해석하는 감상이 아니라, 부분적으로 아는 내가 함부로 최종 판결하지 않는 겸손입니다. 장성한 사람은 쉽게 소문을 믿지 않고, 쉽게 소문을 내지 않으며, 쉽게 형제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6. 바울의 시선은 현재에 머물지 않고 종말의 완성을 내다봅니다. 지금은 희미하게 보지만,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며, 주께서 나를 아신 것처럼 나도 온전히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과정 중에 있습니다. 지금 부분적으로 알고 희미하게 보기에 사랑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렇기에 우리는 그 한계와 간격을 믿음과 소망과 사랑으로 채워 살아야 합니다. 7. 우리는 다름에도 불구하고 하나가 아니라, 다르기 때문에 더욱 풍성한 하나입니다. 나와 같지 않은 사람을 믿고, 사랑하고, 그에 대한 소망을 거두지 않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동시에 가슴 설레는 여정이기도 합니다. 우리 교회는 이동이 많은 공동체입니다. 짧은 시간 안에 서로를 향한 인상이 형성되고, 그 인상이 청동 거울의 희미한 상처럼 굳어질 수 있습니다. 그 자리에서 믿음과 소망과 사랑으로 서로를 대하는 것이, 우리가 함께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빚어지는 길입니다. 주 앞에 서는 날까지, 서로를 응원하며 이 길을 함께 걸어가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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