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명의 아이가 온전한 사람으로 자라기 위해 마을이 필요하듯, 한 명의 그리스도인이 온전한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건강한 교회 공동체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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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 너희의 믿음이 어디에 있느냐? (눅 8: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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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 너희의 믿음이 어디에 있느냐? (눅 8:22-25)
2026년 4월 12일 주일예배
독일 Ramstein 한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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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노트 - 너희의 믿음이 어디에 있느냐? (눅 8:22-25)
1. 살다 보면 예상치 못한 어려움과 통제할 수 없는 위기를 만나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과 제자들은 갈릴리 호수를 건너던 중 갑작스러운 광풍을 만납니다. 제자들 중 최소 네 명은 갈릴리 어부 출신으로, 그 호수를 누구보다 잘 아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도 이 풍랑은 감당할 수 없는 위기였고, 배에 물이 들어차며 죽음의 공포가 엄습했습니다. 갈릴리 바다는 언제든 돌풍이 불 수 있는 곳이었지만, 그럼에도 어부들이 삶을 일구며 살아가던 삶의 터전이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도 그러합니다. 예측 불가한 위험과 통제 불가한 상황이 갑작스레 일어나는 곳이지만, 우리는 그 세상 속에서 우리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2. 풍랑이 이는 동안 예수님은 배에서 잠들어 계셨습니다. 제자들은 그 상황을 스스로 감당하려 애쓰다가 한계에 이릅니다. 그리고 나서야 예수님을 깨우지만, 그들의 말에는 믿음의 간구가 아니라 두려움의 토로만 담겨 있습니다. “우리가 죽겠나이다”라는 외침은 상황에 대한 반응일 뿐입니다. 그들은 예수께서 함께 계신다는 사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배에 계셨지만, 그들의 삶에서는 계시지 않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었습니다.
3. 렘브란트는 27세에 이 장면을 그림으로 남겼습니다. 화면 속 제자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위기에 반응하고 있습니다. 어떻게든 상황과 맞서 사투하는 자가 있고, 고통과 괴로움 속에 무너지는 자가 있으며, 체념한 듯 포기한 자도 있습니다. 한편 두려움 속에서도 예수를 향해 몸을 돌리는 자, 예수의 옷깃을 붙잡고 깨우는 자,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자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림 정중앙에는 렘브란트 자신이 화면 밖의 우리를 응시하며 서 있습니다. 그는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풍랑 앞에서 어떤 모습을 하고 있습니까?"
4. 예수께서는 잠에서 깨어나 바람과 물결을 '꾸짖으셨고', 즉시 잔잔해졌습니다. '꾸짖다'로 번역된 헬라어 '에피티마오'는 질서를 어지럽히는 세력을 꾸짖어 제자리에 머물게 하는 권위 있는 언어적 행위를 가리킵니다. 누가복음에서 예수님은 이미 악한 영을 꾸짖어 쫓아내셨고, 열병을 꾸짖어 떠나게 하셨습니다. 이제 그 동일한 권위로 자연의 혼돈을 꾸짖어 잠잠케 하십니다. 이를 통해 예수님은 창조 세계에 질서와 한계를 부여하신 창조주로서 자신을 나타내십니다. 바람과 파도로 인해 두려워하던 제자들은 이제 예수님 앞에서 더 깊은 두려움을 느낍니다. "도대체 이 분이 누구시기에 바람과 물에게 명하자 그것들이 순종한단 말인가!"
5. 이 여정은 제자들이 스스로 선택한 길이 아니라 예수께서 이끄신 길이었습니다. 그 길에서 풍랑을 만났다는 사실은, 어려움이 곧 잘못된 길을 의미하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때로 잠잠히 계시지만, 여전히 우리를 인도하시는 분입니다. 내가 걸어온 길인 것 같지만, 그 걸음을 인도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6. 풍랑을 잠잠케 하신 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물으십니다. "너희의 믿음이 어디에 있느냐?" 예수께서 배에 타고 계심에도 그 사실이 주는 의미를 깨닫지 못한 채 두려움에 무너진 제자들을 향한 질문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한 질문이 주어집니다. 예수께서 지금 우리와 함께 계심을 알면서도, 우리는 마치 그분 없이 홀로 인생의 풍랑을 감당하듯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예수님은 혼돈 속에서도 질서를 빚으시고, 두려움 속에서도 참된 평안을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이 우리의 배에 타고 계십니다. 그러니 우리의 믿음을 그분께 두고, 그의 인도를 따라 담대히 걸어갑시다.
램스타인 한인교회 는... 1. 램스타인 공군부대 곁에 자리잡은 교회입니다. 하나님께서 램스타인( Ramstein) 과 카이저슬라우테른( Kaiserslautern) 주변 지역으로 우리를 보내셨음을 알고, 보내신 자리에서 복음에 뿌리내려 자라다가,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곳으로 민들레 씨앗처럼 흩어져 생명의 복음을 온 땅에 전하는 교회입니다. 2. 한인 교회입니다. 지역의 특성상 미국 국적의 한인들과 독일에 자리 잡고 살아가는 한인들이 함께 모여 예배하는 한인 디아스포라 공동체입니다. 한국어로 예배하며, 영어 통역을 제공합니다. 한한 가정, 한미 가정, 한독 가정 등 다양한 형태의 한인 디아스포라가 함께 공동체를 이루어, 서로 사랑하고 위로하며, 함께 울고 함께 웃는 사랑의 공동체입니다.. 3. 주님의 몸 된 교회 입니다. 우리의 뜻이 아니라 주님의 뜻에 순종하며, 그 뜻을 이루는 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하나님 의 나라 가 우리 교회 안에 이루어져 풍성한 복과 은혜를 누리고, 하나님 의 사랑 이 우리 교회를 통해 흘러넘쳐 지역과 이웃을 복되게 하며, 하나님 의 영광 이 우리 교회로 말미암아 그 풍성한 모습을 드러내는 주님의 몸 된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예배 시간 주일 예배 13:00 교사 예배 12:00 주일 학교 13:00 유스 (청소년부) 13:00...
죄의 시작 - 뒤집어진 질서 (롬 1:18-25) 2026년 2월 22일 주일예배 설교 독일 Ramstein 한인교회 #로마서 #죄 #질서 #뒤바꿈 #내버려둠 #램스타인한인교회 #kaiserslautern #카이저슬라우테른 #ramstein #홍성일목사 ----- 설교노트 : 죄의 시작, 뒤집어진 질서 (롬 1:18 -25) 1. 바울은 로마의 성도들에게 자신이 평생 전해온 복음의 핵심을 체계적으로 전달하고자 로마서를 기록했습니다. 그는 복음이 유대인이나 헬라인, 지혜자나 야만인을 막론하고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임을 확신했습니다. 당시 사회적 지위나 혈통으로 나누던 모든 명예와 수치의 기준은 복음 안에서 철저히 상대화됩니다. 복음은 특정 계층만을 위한 소식이 아니라, 예수를 주로 믿는 모든 이의 인생을 새롭게 하는 능력입니다. 바울은 복음이 모든 이에게 필요함을 알았기에 스페인까지 가기를 갈망했습니다. 2. 복음이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만드는 근본적인 이유는 모든 인간을 '죄 아래' 있는 죄인으로 진단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자기들끼리 선을 긋고 중심과 주변을 구분하며 우월감을 느끼지만, 하나님은 그 모든 선 바깥에 '죄인'이라는 단 하나의 라벨을 붙이셨습니다. 의인은 없으며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여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는 것이 인간의 비참한 현실입니다. 유대인은 율법을 가졌음에도, 헬라인은 지혜가 있음에도 결국 구원이 절실한 죄인일 뿐입니다. 복음은 이러한 인간의 상대적 우월감을 해체하고 오직 그리스도 안의 속량만을 유일한 해결책으로 제시합니다. 3. 바울은 복음을 설명하기 위해 먼저 죄가 무엇인지를 정의하며, 이는 도덕적 잘못 이전에 관계의 파괴임을 강조합니다. 인간은 만물에 분명히 나타난 하나님의 신성과 능력을 알면서도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영화롭게 하지도 않고 감사하지도 않았습니다.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의 마땅한 도리를 저버리고 하나님을 삶의 중심에서 치워버리는 것...
한 명의 아이 가 온전한 사람으로 성장하기 위해서 마을 이 필요하듯 한 명의 그리스도인 이 온전한 그리스도인으로 성장 하기 위해서는 건강한 교회 공동체 가 필요합니다. ' 흩어진 사람들 '을 의미하는 '디아스포라' 는 ' 씨앗 '처럼 세상에 ' 흩 뿌려진 사람들 '을 또한 의미합니다. 램스타인 한인교회 는 민들레 씨앗 처럼 뿌려진 곳에 자리잡고 자라다가, 때가 차면 다시 생명 의 씨앗을 품고 더 먼 곳으로 흩어지는 자들이, 믿음 안에서 함께 어울려 존재 자체로 소중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신앙 공동체입니다. 램스타인 한인교회 블로그 는 교회 소개와 더불어 - 주일 예배 설교 , 교회 주보 그리고 아침묵상 을 정기적으로 업데이트 합니다. #램스타인한인교회 #램스타인 #카이저슬라우테른 #ramstein #kaiserslauten #한인교회
회개의 세례와 잘려진 나무 (마 3:1-17) 2026년 2월 8일 주일예배 독일 Ramstein 한인교회 #마태복음 #회개 #세례 #열매 #그루터기 #램스타인한인교회 #kaiserslautern #카이저슬라우테른 #ramstein #홍성일목사 ---- 설교노트 - 회개의 세례와 잘려진 나무 (마 3:1-17) 1. 세례 요한의 첫 선포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였습니다. 여기서 ‘가까이 왔다’는 말은 이미 시작되어 지금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현실을 가리킵니다. 천국은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라, 문을 열고 나가면 마주칠 만큼 곁에 와 있습니다. 요한은 이 임박한 하나님의 나라 앞에서 단 하나의 반응만을 요구합니다. 그것이 바로 회개입니다. 2. 회개에 해당하는 헬라어 ‘메타노이아’(metanoia)는 마음과 생각의 변화를 의미합니다. 행동의 변화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앞서야 할 것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과 마음의 변화입니다.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이 원망했던 이유는 단지 인내심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이 애굽을 나와 광야를 걷는 이유에 대한 이해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마음의 변화가 없는 행동은 외식과 자기 치장에 불과할 위험이 늘 있습니다. 3. 요단강에서 베풀어진 세례는 ‘회개의 세례’였습니다.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며 자신의 죄를 자복했고, 이는 구체적인 잘못의 나열을 넘어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는 고백이었습니다. 세례는 몸의 일부를 씻는 것이 아니라 물에 완전히 잠겼다가 나오는 것입니다. 일부분만 고쳐 쓰면 되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다 씻겨져야 하는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회개'이고, 그 사실을 상징하는 것이 회개의 세례입니다. 4. 시편 51편에서 다윗은 자신이 죄악 가운데 태어났다고 고백합니다. 그는 간음과 살인의 죄보다, 그런 자신이 아무런 거리낌 없이 타인을 정죄하는 존재라는 사실에서 자신의 근원적...
2024년 램스타인 한인교회 가족 수련회 2024년 4월 5일~7일 주제 - 공동체를 생각하는 네 가지 장면 Homburg Jugendherberge #Ramstein_Korean_Church #가족수련회 #기쁨 #Ramstein #Kaiserslautern #램스타인한인교회
성령이 우리를 위해 탄식하며 기도하는 이유 (롬 8:26-28) 2025년 8월 10일 주일예배 설교 홍성일 목사 독일 램스타인 한인교회 #로마서8장 #성령의탄식 #고통 #고난과영광 #기도 #요셉 #성령의도움 #붙잡아줌 #램스타인한인교회 #kaiserslautern #ramstein #korean_church #홍성일목사 <설교노트> 성령이 우리를 위해 탄식하며 기도하는 까닭 (롬 8:26-28) 1. 질문 - 로마서 8장 26절은 성령께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기도하신다고 말합니다. 이 말씀은 큰 위로를 주지만, 한편으로 의문을 자아냅니다. 전능하신 성령 하나님은 왜 우리를 즉시 돕지 않으시고, 굳이 '탄식'하며 '기도'하시는 것일까요? 이 질문은 우리를 고난의 현실과 하나님의 도우심에 대한 더 깊은 이해로 인도합니다. 2. 우리의 현실: 삼중의 탄식 - 로마서 8장은 이 세상이 '탄식'으로 가득 차 있다고 진단합니다. 이 탄식은 삼중으로 나타납니다. 먼저 모든 피조물이 신음하며 탄식하고(22절),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 성도들 또한 그 안에서 함께 탄식합니다(23절). 그리고 놀랍게도 성령께서도 우리를 위해 탄식하십니다(26절). 이는 고난이 특정인에게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타락한 세상 속에서 우리 모두가 겪는 보편적인 현실임을 보여줍니다. 고난은 신앙의 부재나 실패의 증거가 아닙니다. 3. 고난을 보는 성경의 시각: 영광을 낳는 산고(産苦) - 세상은 고난을 피해야 할 무의미한 것으로 보지만, 성경은 전혀 다른 전망을 제시합니다. 성경은 고난이 인내와 연단을 거쳐 소망을 이루며(롬 5:3-4), 장차 올 영광의 통로가 된다고 말합니다. 특별히 로마서 8장은 이 고통을 새로운 생명을 낳는 '산고(産苦)'에 비유합니다. 고통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그 과정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영광스러운 무언가를 빚어내고 계시다는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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