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개(1) - 삶에 만족이 없는 까닭 : 깊이 생각하고, 지금 건축하라 (학 1:1-8)
2025년 12월 7일 주일예배
독일 램스타인한인교회 홍성일 목사
2025년 12월 7일 주일예배
독일 램스타인한인교회 홍성일 목사
설교노트
삶에 만족이 없는 까닭 - 깊이 생각하고, 지금 건축하라 (학 1:1-8)
삶에 만족이 없는 까닭 - 깊이 생각하고, 지금 건축하라 (학 1:1-8)
1. 우리는 기술의 발전으로 삶의 속도가 빨라지고 편리해졌지만, 정작 여유와 만족을 잃어버렸습니다. 유튜브 영상이 1~2초만 늦어도 시청을 포기하는 시대에, 우리는 즉각적인 자극만을 쫓는 도파민 중독자처럼 살아갑니다. 세탁기, 건조기, 로봇 청소기 등이 일상의 수고를 덜었지만, 역설적으로 삶의 여유는 오히려 사라졌습니다. 우리는 열심히 사는데도 마음에 만족과 평안, 행복이 깃들지 않는 공허함을 느낍니다. 이 공허함의 원인 중 하나는 생각 없이 살아가는 삶입니다. 이런 현대인의 삶에 대해 ‘호모 브레인 오프(Homo Brain-off)', 즉 생각의 스위치를 끈 채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입니다.
2. 본문은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한 지 18년이 지난 BC 520년 상황을 배경으로 합니다. 유다 백성은 고레스의 칙령으로 예루살렘에 돌아와 성전을 재건하고 거룩한 예배 공동체로 살기를 꿈꾸었습니다. 실제로 귀환 직후 제단을 쌓고 절기를 지키며 감격 속에 성전 기초를 놓는 일까지는 진행했습니다. 그러나 주변 민족의 방해와 경제적 곤궁으로 인해 성전 공사는 곧 중단되었고, 그 상태로 16년이 흘렀습니다. 성전은 기초만 남은 채 방치되었고, 백성은 각자의 생계를 꾸리느라 바쁘게 살아야 했습니다. 마음 한켠으로는 성전과 예배를 생각했겠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다”라는 말로 미루는 사이, 어느덧 긴 세월이 지나가 버렸습니다.
3. 하나님은 학개를 통해 “이 성전이 황폐하였거늘 너희가 이 때에 판벽한 집에 거주하는 것이 옳으냐”(1:4)고 물으십니다. ‘판벽한 집’은 천장과 벽을 널판으로 덮어 마감한 집으로, 솔로몬 성전에 쓰인 나무 널판을 떠올리게 하는 표현입니다. 성전은 기초만 놓인 채 버려져 있었으나, 이들은 나무로 집을 덮고 꾸미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경제적·정치적 상황, 자녀 양육과 생계, 불안한 미래를 이유로 “지금은 성전을 건축할 때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지만, 그들에게 그런 ‘때’는 오지 않을 것입니다.
4.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너희는 너희의 행위를 살필지니라"는 명령을 두 번이나 반복하십니다(5,7). 이 말은 “네가 걸어온 길을 깊이 생각하라”는 명령입니다. 백성은 많이 뿌렸지만 거두는 것은 적었고, 먹고 마시고 입어도 만족이 없었습니다. 품삯을 받아도, 마치 구멍 뚫린 전대에 넣는 것처럼 남는 것이 없었습니다. 문제는 게으름이 아니라, 뒤바뀐 우선순위에 있었습니다. 하나님과 예배가 삶의 중심축에서 밀려난 채, 살아온 결과는 만족 없는 삶이었습니다.
5. 하나님은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성전을 건축하라”는 아주 구체적인 해결책을 주십니다(1:8). 그들은 지금까지 "백향목이 없으니 성전을 지을 수 없다"고 생각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지금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와, 성전을 지으라"고 하십니다. 거창한 준비나 완벽한 타이밍을 기다리지 말고, 지금 행하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포로에서 돌아온 이유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거룩한 공동체로 살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지금껏 그것을 놓치고 살았고, 그 결과는 기쁨도 만족도 없는 삶이었습니다. 환경은 어렵지만, 하나님은 “내가 너희와 함께 하겠다”고 말씀하시며(13), 무너진 우선순위를 바로잡으라 하십니다.
6. 애를 써도 만족이 없다면, 먹어도 배부르지 않고 마셔도 만족이 없으며 입어도 따뜻하지 않다면, 뭐가 잘못된 것인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지금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 성전을 지으라는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백향목이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크고 그럴 듯한 것이어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들은 학개를 통해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성전의 건축을 시작합니다. 그들의 삶의 조건과 환경은 달라지 않았습니다. 바뀐 것이 있다면, 마음의 지형이었고, 이로 인해 그들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으로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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