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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개의 세례와 잘려진 나무 (마 3: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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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개의 세례와 잘려진 나무 (마 3:1-17) 2026년 2월 8일 주일예배 독일 Ramstein 한인교회 #마태복음 #회개 #세례 #열매 #그루터기 #램스타인한인교회 #kaiserslautern #카이저슬라우테른 #ramstein #홍성일목사 ---- 설교노트 - 회개의 세례와 잘려진 나무 (마 3:1-17) 1. 세례 요한의 첫 선포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였습니다. 여기서 ‘가까이 왔다’는 말은 이미 시작되어 지금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현실을 가리킵니다. 천국은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라, 문을 열고 나가면 마주칠 만큼 곁에 와 있습니다. 요한은 이 임박한 하나님의 나라 앞에서 단 하나의 반응만을 요구합니다. 그것이 바로 회개입니다. 2. 회개에 해당하는 헬라어 ‘메타노이아’(metanoia)는 마음과 생각의 변화를 의미합니다. 행동의 변화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앞서야 할 것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과 마음의 변화입니다.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이 원망했던 이유는 단지 인내심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이 애굽을 나와 광야를 걷는 이유에 대한 이해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마음의 변화가 없는 행동은 외식과 자기 치장에 불과할 위험이 늘 있습니다. 3. 요단강에서 베풀어진 세례는 ‘회개의 세례’였습니다.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며 자신의 죄를 자복했고, 이는 구체적인 잘못의 나열을 넘어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는 고백이었습니다. 세례는 몸의 일부를 씻는 것이 아니라 물에 완전히 잠겼다가 나오는 것입니다. 일부분만 고쳐 쓰면 되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다 씻겨져야 하는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회개'이고, 그 사실을 상징하는 것이 회개의 세례입니다. 4. 시편 51편에서 다윗은 자신이 죄악 가운데 태어났다고 고백합니다. 그는 간음과 살인의 죄보다, 그런 자신이 아무런 거리낌 없이 타인을 정죄하는 존재라는 사실에서 자신의 근원적...
복음,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마 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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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마 4:17 ) 2026년 2월 1일 주일예배 #복음 #하나님나라 #천국 #회개 #로마 #램스타인한인교회 #카이저슬라우테른 #kaiserslautern #ramstein #홍성일목사 ___ 설교노트 - 복음,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마 4:17 ) 1. 예수께서 공적으로 사역을 시작하시며 처음 선포하신 말씀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였습니다. 이 한 문장은 예수께서 누구이시며, 무엇을 하러 오셨는지를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 줍니다. 대통령의 첫 연설이 앞으로의 국정 방향을 제시하듯, 예수의 첫 선포는 그의 사역 전체의 비전과 방향을 드러냅니다. 예수님은 다만 하나님 나라의 임박한 도래를 알리는 메신저가 아니라 그 나라의 왕이시기에 그의 이 선포는 절대적 권위를 가집니다. 따라서 이 말씀을 바르게 이해하는 것은 예수의 복음 전체를 이해하는 출발점이 됩니다. 2. 마태복음에 나오는 ‘천국’은 ‘하나님 나라’와 다른 개념이 아닙니다. 마태가 ‘천국’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이유는, 유대인 독자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직접 언급하지 않고 ‘하늘’을 통해 하나님을 가리키는 전통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천국’은 죽은 뒤 가는 어떤 장소를 뜻하는 말이 아니라, 하늘의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나라를 의미합니다. 즉, ‘천국이 가까이 왔다’는 말은 하나님의 통치가 임박했다는 뜻입니다. 이 이해는 복음을 개인의 사후 문제로 축소하지 않게 해 줍니다. 3. 우리는 흔히 복음을 ‘예수를 믿으면 죄 사함을 받고 죽어서 천국 간다’는 메시지로 이해해 왔습니다. 이른바 ‘십자가 속죄 중심의 복음’은 분명 성경적이며 중요한 내용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복음의 전부는 아닙니다. 성경이 말하는 복음은 ‘죽은 뒤 천국 가는 방법’에 대한 정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왕으로 다스리시는 나라가 도래했다는 소식입니다. 복음에 대한 편협한 이해는 신앙과 삶을 분리하며, 믿음 자체를 교리적 동의로 전락시...
마태복음 - 예수님의 명령과 하나님 나라의 부유함 (마 7:2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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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 예수님의 명령과 하나님 나라의 부유함 (마 7:24 -29) 2026년 1월 25일 주일예배 독일 Ramstein 한인교회 #산상수훈 #여섯가지반명제 #오른쪽뺨 #악한자 #램스타인한인교회 #카이저슬라우테른 #kaiserslautern #ramstein #홍성일목사 -------- 설교노트 - 예수님의 명령과 하나님 나라의 부유함 (마 7:24 -29) 1. 우리가 듣고 행해야할 예수님의 ‘나의 이 말’은 구체적으로 산상수훈의 명령들을 가리킵니다. 산상수훈에는 많은 명령형 표현이 나타나는데, 직접적인 명령형만 따져도 50번 이상이며, 명령의 의미를 담고 표현까지 따지면 그보다 훨씬 많은 명령이 나타납니다. 이는 산상수훈이 하나님 나라의 왕이신 예수께서 선포하신, 그 나라의 헌장임을 나타냅니다. 이 명령들은 우리가 발을 딛고서 살아가는 이 세상이 얼마나 악한지를 폭로하며, 그것과 전혀 다른 원리로 작동하는 하나님 나라를 보여줍니다. 우리는 이 엄중한 명령 앞에서 세상과는 전혀 다른 하나님 나라의 질서를 마주합니다. 2. 산상수훈에는 명령형 표현이 쉼 없이 쏟아집니다. 기뻐하라, 빛을 비추라, 화목하라, 맹세하지 말라, 원수를 사랑하라 등 수십 개의 명령이 이어집니다. 그 가운데 우리가 만나는 첫 번째 명령은 ‘핍박 속에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라’는 것입니다(마 5:11 -12). 세상의 폭력과 모욕에 대해, 하나님 나라에 속한 자들은 그 속에서 오히려 기뻐하며 자신의 소속을 증거합니다. 초대 교회는 예수의 이름으로 고난받는 것을 기쁨의 이유로 삼았습니다. 이는 그들이 복음에 합당한 자임을 나타내는 증거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자신을 변명하는 방식이 아니라, 그 빛을 비추는 것으로 자신의 존재를 나타냅니다. 이것이 산상수훈의 두 번째 명령인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치게 하라’입니다. 3. 예수님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전통적 ...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마태복음 27:2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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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2월 16일(월) - 마태복음 27:27-44 (마 27:40) 40 이르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며 예수님의 공생애는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돌을 떡이 되게 하라,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뛰어내리라”라는 마귀의 시험으로 시작되었습니다(마 4:3,5). 그리고 십자가에 달린 채 예수는 또다시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40,42,43)는 희롱의 말을 듣습니다. 마태는 이렇게 예수님의 생애를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문장 안에 담아냅니다. 세례 받을 때에 예수는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아들’로 선포됩니다(마3:17), 그리고 공생애 사역의 한가운데서 예수는 ‘그리스도,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됩니다(마 16:16). 이어진 변화산에서의 변용에서 예수는 또다시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아들’로 알려집니다(17:5). 그리고 마지막으로 백부장에 의해 “참으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었다”라고 고백됩니다(27:54). 하나님의 아들이었기에 예수는 십자가에서 내려오지 않고,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십니다(40). 하나님의 아들이었기에 그는 자기를 구원하지 않고 다른 이들을 구원합니다(42). 하나님의 아들이었기에 그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자기의 삶과 죽음을 온전히 그의 손에 의탁합니다(cf.43). 누군가에 대한 조롱과 모욕의 말 한마디 내뱉는 것으로 사람들은 묘한 권력의 맛을 느끼며 허영에 부풀지만, ‘하나님의 아들’ 예수는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자기의 이웃을 자기처럼 사랑하는 분으로 거기 계십니다(마 22:36-40). '구원과 영생'은 예수께서 열어 놓으신 '아들의 그 길을 따라 걸어가는 자들'에게만 허락되고 누려질 것입니다. < 기도 > 조롱과 모욕의 말을 내뱉는 것으로 자기 권력을 삼는 자의 허영이 ...
마태복음 - 나의 이 말을 듣고, 그 말을 행하는 자 (마 7:2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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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 나의 이 말을 듣고, 그 말을 행하는 자 (마 7:24-29) 2026년 1월 18일 주일예배 #산상수훈 #안식일 #정결규례 #상한갈대 #마태7장 #램스타인한인교회 #카이저슬라우테른 #kaiserslautern #ramstein #홍성일목사 설교노트 - 나의 이 말을 듣고, 그 말을 행하는 자 (마 7:24-29) 1. 예수님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와 "듣고 행하지 않는 자"를 반석 위에 집 짓는 자와 모래 위에 집 짓는 자로 비유하십니다. 이는 단순히 실천의 유무가 아니라, 무엇을 삶의 기초로 삼느냐의 문제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듣고 행하라"가 아니라 "나의 이 말"을 듣고 "그 말"을 따라 살라는 것입니다. 비교되는 것은 실천의 유무 이전에 예수와 그 말에 대한 입장과 태도입니다. 2. 무리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망치로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습니다(마 7:28). 그들이 놀란 이유는 예수님의 가르침이 권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서기관들은 전통과 랍비들의 해석에 의존했지만, 예수님은 자신을 기준으로 율법의 의미를 밝히셨습니다. 예수는 자기의 말, 곧 자기 자신을 기준으로 제시합니다. 예수의 말을 들은 자는 더 이상 중립일 수 없게 됩니다. 3. 안식일에 병자를 고쳐도 되는지를 묻는 질문 앞에서 예수님은 자신을 “안식일의 주인”이라 선언하십니다(마 12:8). 지금까지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안식일 규정을 어기지 않을 수 있나?’를 물었고, 그렇기에 “안식일에 병자를 고쳐도 되는가?”는 그들에게 진지한 물음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의 안식일 규정을 전면적으로 해체하고, 안식일의 의미를 새롭게 구성하셨습니다. 예수로 인해 안식일은 단지 ‘일하지 않는 날’이 아니라, 깨어진 안식을 회복하는 구원의 날이 됩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나의 이 말’입니다. 4. 산상수훈의 말씀을 듣고 무리는 충격을 받고 놀랐지만...
마태복음 - 무엇에 기초하여 살 것인가 (마 7:2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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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 무엇에 기초하여 살 것인가 (마 7:24-27) 2026년 1월 11일 주일 예배 #마태복음7장 #반석 #기초 #외식 #관계 #카이저슬라우테른 #램스타인한인교회 #kaiserslautern #ramstein #홍성일목사 설교노트 : 무엇에 기초하여 할 것인가? (마 7:24 -27) 1. 새해를 맞아 우리 교회는 '말씀으로 사는 교회'라는 표어 아래 신약성경을 함께 완독하고자 합니다. 성경을 읽는 이유는 종교적 의무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삶의 터전이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산상수훈을 마치며 두 부류의 사람을 대조하십니다. '예수님의 말을 듣고 행하는 자'와 '예수님의 말을 듣고 행하지 않는 자'입니다. 문제가 되는 것은 단지 실천의 유무가 아니라, 무엇에 기초하여 살아가는 가에 대한 물음입니다. 2. 산상수훈 전체를 관통하는 단어가 있다면 그것은 ‘외식'(hypocrisy)입니다. 예수님은 구제나 기도, 금식을 행할 때 "외식하는 자와 같이 하지 말라"고 반복해서 경고합니다. 그들은 구제, 기도, 금식과 같은 행위조차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 행합니다. 하나님과의 은밀한 관계 대신 타인의 시선과 평가를 의식하며 살아갑니다. 그들의 종교적 열심은 자신이 영광을 받기 위한 수단일 뿐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자들을 ‘못된(/썩은) 나무'라고 부르십니다. 그들 안엔 하나님의 생명이 없기 때문입니다. 3. 예수님은 ‘외식하는 자들’을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방인들’과 나란히 두십니다. 이방인은 돌보시는 아버지를 모르기에 무엇을 먹을까 염려하며, 외식하는 자는 하나님을 진정으로 신뢰하지 않기에 자기를 꾸밉니다. 겉모습은 종교적인 것과 세속적인 것으로 나뉘지만, 본질은 같습니다. 둘 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신뢰하지 않습니다. 둘 다 자기를 섬깁니다. 그들은 본질적인 의미에서 무신론자입니다. 하나님이 안 계셔도, 그들의 삶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