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나(4) - 하나님의 긍휼과 요나의 분노 (요나 3:1-4:4)
요나(4) - 하나님의 긍휼과 요나의 분노 (요나 3:1-4:4)
2025년 10월 26일 주일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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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4) - 하나님의 긍휼과 요나의 분노 (요나 3:1-4:4)
1. 하나님께서는 도망쳤던 요나에게 "두 번째로" 말씀하심으로써 실패한 종을 포기하지 않으시는 은혜를 보이셨습니다(욘 3:1). 요나는 이번에 불순종하지 않았지만, 그의 순종은 내적 헌신이 아닌 마지못해 따르는 외적 순종이었습니다. 니느웨는 사흘 길이 되는 큰 성읍이었으나, 요나는 하루만 다니며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는 심판만을 외쳤습니다(욘 3:4). 그의 메시지에는 회개의 촉구도, 용서의 가능성도 담겨있지 않았습니다. 요나의 몸은 니느웨에 있었지만, 그의 마음은 여전히 니느웨의 멸망을 바라고 있었습니다. 진심이 담기지 않은 사역에는 기쁨이 없고, 억지로 감당하는 순종은 결국 분노를 낳습니다.
2. 요나의 차갑고 불완전한 선포를 들은 니느웨 사람들은 놀랍게도 "하나님을 믿었습니다"(욘 3:5). 니느웨의 왕과 백성은 금식했을 뿐 아니라, 구체적으로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하마스)에서 떠나라"고 선포했습니다(욘 3:8). 그들은 삶의 방향을 바꾸는 회개를 보여주었습니다(욘 3:10). 요나서에 등장하는 이방인들은 한결같이 하나님께 합당한 반응을 보이는 반면 선지자 요나 자신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3. 요나가 하나님의 뜻에 저항하는 첫 번째 이유는 뿌리 깊은 선민의식입니다. '나는 옳고 너희는 틀렸다'는 자기중심적 판단이 그를 사로잡고 있었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앗시리아로부터 받은 역사적 상처 때문이었습니다. 북이스라엘은 오랫동안 앗시리아의 침략과 위협에 시달렸고, 니느웨는 그들에게 원수이자 증오의 대상이었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니느웨의 멸망을 선포하라 하셨다면 요나는 열정적으로 순종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그는 원수의 구원을 위해 수고해야 하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과제를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4. 니느웨가 악한 길에서 떠나자, 하나님은 재앙을 내리지 않으셨습니다. 이 순간 요나의 내면에 쌓여 있던 분노가 폭발합니다. "그것이 요나에게 심히 악하게 보였다"는 것은, 요나가 '하나님의 선하심'을 '악하다'고 느낀 것입니다. 요나는 하나님께 항변합니다: "주께서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내가 알았기에 도망했습니다." 놀랍게도 요나는 하나님의 성품을 몰라서가 아니라, 너무나 잘 알았기에 불순종했던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이 원수 같은 니느웨까지 용서하실 것이 두려워 도망쳤습니다.
5. 요나는 출애굽기 34:6-7의 신앙고백을 인용하면서, 그것을 하나님을 비난하는 근거로 사용합니다. 이 고백은 본래 이스라엘이 금송아지를 만들며 범죄했을 때 하나님이 그들을 용서하신 은혜의 선언이었습니다. 요나는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긍휼에는 감격하면서도, 자신이 용서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허락된 긍휼은 부당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1만 달란트를 탕감받은 자'라는 자각이 없으면, '형제가 내게 진 100데나리온'의 빚이 억울하게 느껴집니다. 이것이 자기중심적인 우리의 모습입니다. 멸망 받아 마땅하기는 이스라엘도 마찬가지였지만, 요나의 눈에는 앗시리아의 '강포'만 보였습니다.
6. 니느웨 백성은 요나의 무심한 선포를 듣고도 즉시 회개했지만, 선지자 요나는 폭풍과 물고기 뱃속의 경험, 니느웨의 회개를 목격하고도 여전히 변하지 않았습니다. 신앙의 여정에서 진정한 성공은 거대한 성읍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성공은 하나님의 마음과 시각이 나의 것으로 내면화되는 것입니다.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그 사람을 바라보는 나의 눈에 하나님의 긍휼이 담길 때,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새로운 걸음을 내딛게 됩니다. "네가 성내는 것이 과연 옳으냐?" 이 질문 앞에 우리의 완고한 마음이 깨어지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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