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주 하나님을 만나다 (창세기 1:1-5)
창조주 하나님을 만나다 (창세기 1:1-5) 2025년 8월 31일 주일예배 #창세기1장 #창조주하나님 #광야 #혼동과공허 #인간조건 #기원이야기 #램스타인한인교회 #kaiserslautern #ramstein #홍성일목사
<설교노트> 창조주 하나님을 만나다 (창 1:1-5)
1. 창세기는 성경의 첫 책으로, 그 시작을 이해하는 것이 성경 전체를 이해하는 열쇠가 됩니다. 첫 장만 읽고 나머지를 포기하기 쉽지만, 1–11장은 창조와 인류 역사의 큰 그림을 보여줍니다. 성경을 읽을 때 중요한 것은 내가 원하는 답을 억지로 찾는 것이 아니라, 성경이 제시하는 물음과 답을 주의 깊게 살피는 것입니다. 누가, 언제, 어떤 상황 속에 있는 자들에게, 무엇을 말하려 했는가?를 묻고 그 답을 찾아야 합니다. 창세기는 출애굽하여 광야를 걷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3. 하지만 이스라엘도 이런 신을 기대했을까요? 이스라엘이 원했던 신은 창조주가 아니라, ‘떡과 고기로 배불리 먹게 하는 신’이었습니다. 먹을 것이 떨어지자 그들은 이집트를 그리워하며 하나님을 원망합니다(출 16:3). 만일 여호와가 그들에게 떡과 고기로 배불리게 하지 못하면, 그들에게 그런 신은 쓸모가 없습니다. 다른 신을 찾거나, 아니면 이 신을 잘 구슬려서 말을 듣게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4. 창조주는 사실 버겁습니다. 자신들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인도하는 신이 세상을 창조하신 유일하신 하나님이라면, 머리가 복잡해집니다. 세상의 악은 그럼 왜 있는가? 내가 노예로 있는 동안 이 신은 왜 침묵했는가? 내 아버지가 이집트 관리인에게 매맞아 죽을 때 이 신은 무엇을 했는가? 등 해결할 수 없을 것 같은 물음이 이어집니다. 그냥 애굽왕 바로를 칠 정도의 힘이 있는 신이면 딱 좋습니다. 그 신이 위기에서 자기들을 건져주고, 하늘에서 만나를 주어 먹게 하면, 그것으로 충분한 것입니다.
5. 창조주가 버거운 이유는, 내가 그의 요구를 어느 정도 들어주고 그도 내가 원하는 것을 어느 정도 들어주는 선에서 타협을 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신들로 가득한 사회에서 신과 종교적 관계를 갖는다는 것은 일종의 거래입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어줄 수 있는 힘을 가진 신이 있다면, 나는 그에게 그가 원하는 것을 제공하고, 그 댓가로 내가 원하는 것을 받으면 됩니다. 이 경우, 거래의 주도권은 신이 아니라 내가 가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창조주 하나님은 거래를 시도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닙니다. “사람아, 네가 어디 있느냐? 네가 어찌하여 나를 피해 숨었느냐?”라고 물으시면, 그에 대답하지 않을 수 없는 존재가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6.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으려고 시내산에 올라간지 오래도록 내려오지 않자, 이스라엘 백성은 황금으로 송아지를 만듭니다. 황금으로 송아지 형상을 만들고는, 그것을 향해, ‘너는 애굽 땅에서 우리를 인도한 신이다’라고 말합니다. 사람들은 천지를 지으신 창조주가 아니라, 자기들의 필요를 채워줄 신을 필요로 할 뿐입니다. 하지만 그런 이스라엘을 향해 하나님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했다’는 말씀을 들려주십니다.
7. 사람들은 창조주가 아닌, 다루기 쉬운 신을 원하지만, 그러나 그렇게 해서는 혼돈과 공허가 반복될 뿐입니다. 창조는 혼돈에 질서를 부여하고, 공허에 내용물을 채우는 하나님의 일하심입니다. 그의 일하심의 결과 만물이 서게 되었고, 우리도 하나님이 정하신 법과 원리의 기초하여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일까요? 청소년기는 ‘나는 반항한다 고로 존재한다’를 모토로 살지만, 하나님을 떠나서는 혼돈과 공허가 반복될 뿐입니다.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비로소 우리는 나로서 자유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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