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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주일 - 구유에 누이신 하나님의 아들 (눅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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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주일 - 구유에 누이신 하나님의 아들 (눅 2:1-12) 2025년 12월 21일 성탄주일예배 독일 Ramstein 한인교회 홍성일 목사 #구유 #성탄절 #목자 #누가복음2장 #빈방없습니다 #램스타인한인교회 #ramstein #kaiserslautern #카이저슬라우테른 #홍성일목사 #한인교회 ---- 설교노트 - 구유에 누이신 하나님의 아들 (눅 2:1-12) 1. 우리는 성탄을 흔히 ‘빈방이 없어 거절당한 밤’으로 기억해 왔습니다. ‘빈방 없습니다’라는 성탄절 연극에서 요셉과 마리아는 냉정하게 외면당한 부부로 등장합니다. 이 이야기는 예수님의 낮아지심과 세상의 냉혹함을 설명하는 데 자주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나 누가복음 본문 자체는 성탄의 밤을 그렇게 묘사하지 않습니다. 본문은 ‘거절의 밤’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삶의 자리로 들어오신 밤을 전합니다. 2. 누가복음은 예수의 탄생을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의 호적 명령에서 시작합니다. 모든 사람을 고향으로 이동시키는 황제의 명령은 권력의 통제 수단이었습니다. 그 명령으로 요셉과 마리아는 나사렛을 떠나 베들레헴으로 향하게 됩니다. 배가 많이 부른 마리아와 함께한 이 여정은 쉽지 않은 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강제된 이동을 통해 메시아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나리라는 미가의 예언이 성취됩니다. 인간의 권력은 자기 목적을 위해 명령했지만, 하나님은 그 길을 자신의 약속을 이루는 도구로 사용하셨습니다. 3. 우리는 흔히 요셉과 마리아가 여관 주인에게 매몰차게 거절당했다고 생각하곤 합니다. 그러나 본문에 등장하는 ‘여관(카탈뤼마)’은 상업적인 숙박 시설이 아니라 일반 가정의 ‘손님용 객실’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베들레헴과 같은 작은 농촌 마을에 상업적 여관이 있었을 가능성은 크지 않습니다. ‘객실에 머물 곳이 없었다’는 말은 호적을 위해 내려온 사람들로 인해 손님을 위한 공간이 이미 가득 찼다는 의미입니다. 그로인해 요셉과 마리아는 밖으로 내몰린 것이 아니라, 다른 방...

2025년 12월 21일 교회 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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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개 (2) - 보잘것없음, 그 너머의 영광 (학개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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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개 (2) - 보잘것없음, 그 너머의 영광 (학개 2:1-5) 2025년 12월 14일 주일예배 #학개 #보잘것없음 #기대 #실망 #비교의기준 #램스타인한인교회 #ramstein #카이저슬라우테른 #kaiserslautern #한인교회 --------- <설교노트> 학개(2) - 보잘것없음, 그 너머의 영광 (학개 2:1-5) 1. 16년 동안 성전을 방치했던 귀환 공동체는 학개의 말을 듣고, 성전 공사를 재개하였습니다. 그때가 BC 520년 '여섯째 달 24일'로, 우리 달력으로는 더위가 한풀 꺾이는 9월 중순 경이었습니다. 행복은 마음 먹기에 달려 있다고들 말하지만, 오히려 몸을 움직여 무엇을 하느냐에 직접적으로 좌우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16년 동안 방치된 채, 마음 속 ‘무거운 짐’처럼 얹혀 있던 성전 건축을 재개하면서, 귀환 공동체는 참으로 기쁘고 행복했을 것입니다. 2. 그런데 성전 공사가 재개된 지 한 달이 채 되기 전인 '일곱째 달 21일', 하나님의 말씀이 선지가 학개에게 다시 임합니다(2:1). 일곱째 달 21일은, 초막절 마지막 날로, 우리 달력으로는 10월 중순에 해당하는 시기입니다. 초막절은 곡식의 타작과 과일의 수확이 대부분 마무리되어 그 산물을 저장한 뒤에 지키는 절기로, 그 때는 일년 중 가장 먹거리가 풍성한 시기였습니다. 창고에는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이 넉넉한데, 이스라엘은 일부러 마당이나 지붕 위에 초막을 짓고 그 곳에서 일주일을 보냈습니다. ‘최대한의 풍요’와 ‘정착할 곳 없는 불안정한 상황’이 공존하는 아주 기이한 조합이 바로 초막절이었습니다. 초막절의 이 역설적 조합은 성전 건축을 재개한 공동체의 형편과 그대로 겹쳐집니다. 3. 성전 공사를 시작하기 전, 그들은 자신들의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공사를 시작하고, 돌들이 올라가고, 공사를 위한 가설 구조물 등이 세워지는 것을 보면서 이들은 자신들이 짓는 ...

2025년 12월 14일 교회 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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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2월 14일 교회 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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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개(1) - 삶에 만족이 없는 까닭 : 깊이 생각하고, 지금 건축하라 (학 1:1-8) 2025년 12월 7일 주일예배  독일 램스타인한인교회 홍성일 목사 설교노트 삶에 만족이 없는 까닭 - 깊이 생각하고, 지금 건축하라 (학 1:1-8) 1. 우리는 기술의 발전으로 삶의 속도가 빨라지고 편리해졌지만, 정작 여유와 만족을 잃어버렸습니다. 유튜브 영상이 1~2초만 늦어도 시청을 포기하는 시대에, 우리는 즉각적인 자극만을 쫓는 도파민 중독자처럼 살아갑니다. 세탁기, 건조기, 로봇 청소기 등이 일상의 수고를 덜었지만, 역설적으로 삶의 여유는 오히려 사라졌습니다. 우리는 열심히 사는데도 마음에 만족과 평안, 행복이 깃들지 않는 공허함을 느낍니다. 이 공허함의 원인 중 하나는 생각 없이 살아가는 삶입니다. 이런 현대인의 삶에 대해 ‘호모 브레인 오프(Homo Brain-off)', 즉 생각의 스위치를 끈 채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입니다. 2. 본문은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한 지 18년이 지난 BC 520년 상황을 배경으로 합니다. 유다 백성은 고레스의 칙령으로 예루살렘에 돌아와 성전을 재건하고 거룩한 예배 공동체로 살기를 꿈꾸었습니다. 실제로 귀환 직후 제단을 쌓고 절기를 지키며 감격 속에 성전 기초를 놓는 일까지는 진행했습니다. 그러나 주변 민족의 방해와 경제적 곤궁으로 인해 성전 공사는 곧 중단되었고, 그 상태로 16년이 흘렀습니다. 성전은 기초만 남은 채 방치되었고, 백성은 각자의 생계를 꾸리느라 바쁘게 살아야 했습니다. 마음 한켠으로는 성전과 예배를 생각했겠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다”라는 말로 미루는 사이, 어느덧 긴 세월이 지나가 버렸습니다. 3. 하나님은 학개를 통해 “이 성전이 황폐하였거늘 너희가 이 때에 판벽한 집에 거주하는 것이 옳으냐”(1:4)고 물으십니다. ‘판벽한 집’은 천장과 벽을 널판으로 덮어 마감한 집으로, 솔로몬 성전에 쓰인 나무 널판을 떠올리게 하는 표현입니다. 성전은 기초만 놓인 채 버려져 있었으나, 이들은 나무로...

2025년 12월 7일 교회 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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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는 것 (마 19:2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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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는 것 (마 19:27-30) 2025년 11월 30일 주일예배 설교 독일 Ramstein 한인교회 홍성일 목사 <설교노트>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는 것(마 19:27-30) 1. 지난 주 우리는 포도원 품꾼 비유를 통해 ‘제한된 자원’에 대한 사회적 전제 속에서 시기와 두려움으로 살아가는 세상을 하나님 나라와 바교하여 살펴보았습니다. 이 세상의 재화가 한정되어 있다면, 누군가가 하나를 얻으면 다른 누군가는 하나를 잃게 될 것입니다. ‘제로섬(Zero-sum) 게임’의 논리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누군가의 잘됨은 나에게 불안의 이유가 되고, 누군가의 성취는 나에게 위협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는 이 세상의 ‘한정된 재화’의 논리와는 다르게 작동합니다. 하나님의 곳간은 마르지 않기에, 누군가에게 베풀어진 은혜가 나에게 허락될 은혜의 상실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2. 안타깝게도 많은 성도가 여전히 세상의 '제한된 자원' 논리로 신앙을 이해하곤 합니다. 누군가가 구원을 받거나 은혜를 입으면 마치 내가 받을 구원의 기회나 몫이 줄어들 것처럼 오해합니다. 14만 4천이라는 상징적인 숫자를 문자적으로 해석하여 경쟁을 부추기는 이들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포도원 품꾼 비유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줍니까? 주인은 12시간 일한 사람에게도 한 데나리온을 주고, 1시간 일한 사람에게도 한 데나리온을 줍니다. 주인은 얼마든지 자신이 은혜로 불러들인 자들에게 그가 약속한 줄 것이 있습니다.   3. 우리는 흔히 천국을 이 땅에서의 수고에 따라 차등적인 보상이 주어지는 곳으로 상상하곤 합니다. 헌신한 자는 큰 집을, 그렇지 못한 자는 초라한 거처를 얻는다는 식의 설명은 자본주의적 욕망을 천국에 투영한 세속적인 상상력일 뿐입니다. 차별적 지위와 소유가 기쁨의 근거가 되는 곳이라면, 그곳은 하나님 나라가 아니라 탐욕스러운 세상의 연장선에 불과할 뿐입니다. 4. ...

2025년 11월 30일 교회 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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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 악한 눈의 세계와 하나님 나라의 은혜 (마 2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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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 악한 눈의 세계와 하나님 나라의 은혜 (마 20:8-16) 2025년 11월 23일 주일예배 독일 Ramstein 한인교회 홍성일 목사 설교노트 - 악한 눈의 세계와 하나님 나라의 은혜 (마태복음 20장 1절-16절) 1. 추수감사주일을 맞이하여 우리가 드려야 할 감사는 모든 조건이 완벽한 ‘화창한 날의 감사’만이 아닙니다. 오히려 웅덩이에 발이 빠지고 먹구름이 드리운 날에도, 여전히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는 것이 참된 감사입니다. 올 한 해, 우리는 때로는 아픔과 상실을 경험했고, 여전히 미진한 숙제들을 안고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감사는 남보다 더 많이 가졌다는 비교우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셨다는 사실에 터를 두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드릴 고백은 비록 비를 맞고 옷자락이 더러워졌을지라도, 오늘까지 우리를 지탱해주신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대한 감사입니다. 2. 오늘 본문의 포도원 주인은 이른 아침부터 오후 5시까지, 일거리가 없어 서성이는 자들을 불러 포도원에 들여보냅니다. 하루 일과가 끝나고 품삯을 계산할 때, 주인은 1시간만 일한 나중 온 자들에게 하루치 품삯인 한 데나리온을 지급하는 파격적인 은혜를 베풉니다. 이를 본 12시간 일한 자들은 자신들이 훨씬 더 많은 보상을 받을 것이라 기대했지만, 똑같이 한 데나리온을 받자 주인에게 분노를 터뜨립니다. 그들의 분노는 약속된 임금을 받지 못해서가 아니라, 1시간 일한 자들과 자신들을 ‘동일하게 대우했다’는 사실에서 비롯됩니다. 3. 주인은 불평하는 자들을 향해 “내가 선하므로 네 눈이 악하냐?”라고 책망하는데, 여기서 ‘악한 눈’은 당시 문화에서 매우 중요한 개념이었습니다. 당시 지중해를 둘러싼 세계의 사람들은 타인의 시기 어린 시선이 실제로 가축을 병들게 하거나 재산을 망가뜨리는 물리적 힘이 있다고 믿어, 이를 막기 위해 ‘나자르’ 같은 부적을 사용하곤 했습니다. 성경에서도 ‘악한 ...

2025년 11월 23일 교회 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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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1월 16일 교회 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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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5) - 요나의 박넝쿨, 그의 분노의 이유 (요나 4: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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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5) - 요나의 박넝쿨, 그의 분노의 이유 (요나 4:1~11) 2025년 11월 9일 주일예배 #요나 #분노 #은혜와분노 #요나의박넝쿨 #램스타인한인교회 #kaiserslautern #ramstein #홍성일목사 설교노트 - 요나의 박넝쿨, 그의 분노의 이유 (요나 4:1-11) 1. 요나는 사역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분노하며 죽기를 구합니다(욘 4:3). 이는 실패나 고난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역설적이게도, 그 절망의 이유는 원수의 도시 니느웨에 임한 ‘너무나 큰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었습니다. 요나는 멸망을 선포했으나, 니느웨는 왕부터 짐승까지 회개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회개를 보시고 뜻을 돌이키셨을 때, 요나는 자신의 기대와 다른 전개에 깊은 분노를 느꼈습니다. 4장 1절의 원문은 이 감정을 ‘그것이 요나에게 큰 악(‘라아’)이었다’라고 묘사할 만큼, 그는 하나님의 용서를 불의로 간주했습니다. 2. 요나는 하나님이 은혜롭고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는 분임을 명확히 알았습니다(욘 4:2). 그는 이스라엘의 전통적인 신앙 고백을 정확히 인용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위대한 자비가 원수 니느웨에 적용되는 것을 견딜 수 없었습니다. 요나가 가진 ‘정의’는 악인이 반드시 심판받는 것이었습니다. 니느웨가 용서를 받는다면, 그들에게 고통받은 이스라엘의 눈물은 누가 닦아준다는 말입니까? 자신의 정의관에 따라 분노하는 요나에게, 하나님은 “네가 성내는 것이 옳으냐?”라고 물으십니다(욘 4:4). 3. 요나는 하나님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는 대신 행동으로 반응합니다. 그는 성읍에서 나와 동쪽 언덕에 초막을 짓고 앉았습니다(욘 4:5). 그는 니느웨를 떠나지 못하고, 성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머물렀습니다. 이는 혹시라도 하나님이 마음을 바꾸어 저 성을 멸망시키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버리지 못한 모습입니다. 요나는 물리적으로 초막에 앉아 있지만, 영적으로는 ‘자기 연민과 분노의 감...

2025년 11월 9일 교회 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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